양주학교폭력변호사 국가폭력·학살의 고통…시로 이어지는 한국·팔레스타인·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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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인이 팔레스타인을 위해 쓴 시를 모은 시집 <응답의 시>(얼굴들)가 출간됐다. 그리핀 시문학상과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등을 받은 세계적 시인 김혜순부터 나희덕·김소연·진은영 등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들, 문단 테두리 밖에서 시를 써온 이들과 가자지구로 향하는 배에 올랐던 활동가 해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들의 신작 시가 한데 묶였다. 팔레스타인의 고통에 응답하고 연대하는 마음이 이 일을 가능하게 했다.
시집은 1인 출판사 얼굴들의 강소영 대표의 기획에서 출발했다. 그는 “국내에 팔레스타인 작가들의 책은 많이 나왔지만, 한국 작가의 목소리로 나온 책은 찾기 어려웠다”며 “한국 작가들이 팔레스타인에 응답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작가들도 부채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시를 청탁했을 때 많은 분들이 응해주셨다”고 말했다.
시집에는 팔레스타인 시인들의 시가 자주 인용된다. 대부분 지난해 독립출판사 접촉면에서 출간한 <팔레스타인 시선집>에 수록된 시들이다. 이 시집엔 2023년 12월 이스라엘 공습으로 가족과 함께 숨진 가자지구 출신 시인이자 학자 리파트 알아리르 등 31인의 시가 수록됐다. “내가 죽어야 한다면/ 희망을 낳기를/ 이야기로 남기를”(알아리르 ‘내가 죽어야 한다면’) 같은 시구처럼, 팔레스타인이 건넨 이야기에 한국 작가들이 적극적으로 응답한 결과가 이 책이다. 그리하여 책의 제목은 <(팔레스타인을 위한/향한) 응답의 시>다.
자신이 팔레스타인의 고통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지 되묻는 시인들의 고민부터, 한국 역사 속 폭력의 기억에서 연결고리를 찾고, 방위산업에 투자하며 전쟁에 일조하는 한국(인)을 향해 일갈하는 다양한 목소리가 실렸다.
김소연 시인은 “가자지구 생존자들에게 응답하고 연대하는 시”를 쓰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한국전쟁 1·4후퇴 때 몰살당한 피란민 가운데 간신히 살아남았던 어린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린다. 가자지구에서 매일 전해지는 죽음의 소식을 접하면서 “이 시는 어린 엄마의 작은 손을 잡으며 같이 배회한다…공포의 얼굴을 그대로 쓰고서, 다른 얼굴을 영원히 마주하면서.”(‘학살의 일부’)
나희덕 시인은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대인들이 벌이는 홀로코스트,/ 그들은 왜 자기 안의 히틀러를 보지 못하는가”(‘가자, 라는 지옥’)라며 자신들이 당한 피해로 가해를 정당화하는 이스라엘을 비판하고, 송경동 시인은 “방산이 미래 먹거리라는/ 이 정부가 네타냐후다…누군가를 대량으로 더 정밀하게 학살하는 일에 돈을 걸고/ 그 피 맛과 핏값의 배분을 원하는/ 당신이 전범이다”(‘세계의 평화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라며 한국 또한 이 전쟁과 무관치 않다고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책을 닫는 것은 해초의 시다. “고통이 나눌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그 사이에도 아이들은 죽는다 더 큰 시간 속에서 분명 조그만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렇게 수없이 도착한다/ 여기 그러니까 가자로”(‘여기 그리고 저기’)
시와 함께 47인의 시작노트가 실렸다. 이들이 먼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에 가닿기 위해 애쓰고 헤맨 사유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응답의 시>가 우리와 거리가 멀어보이는 고통에 응답하기 위한 노력이라면, <살았으니, 말해야 해요>(사회평론)는 우리가 의도적으로 지워버린 가해의 기억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책이다. ‘베트남전쟁 아카이브 시집’이라는 부제를 단 책은 한베평화재단 창립 10주년을 맞아 기획됐다.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을 기억하기 위해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베트남전을 다룬 한국 시들을 모았다.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총 32만명의 한국군이 베트남에 파병됐고, 한국군은 베트남에서 민간인 총 9000여명을 학살했다. 이 명료한 수치로 기록된 역사는 우리에게 지워지고 은폐된 이야기다. 도종환 시인과 베트남 시인 탄타오가 평화·화해를 다짐하며 주고받은 시를 시작으로 신세훈·김명인·송기원 등 베트남전에 직접 참전한 이들과 베트남을 직접 찾아갔던 이재무·나희덕 등 시인 16명의 시, 베트남 학살 기록을 보고 송경동·김현아·김용택 등 시인 9명이 쓴 시 등이 수록됐다.
눈길을 붙잡는 것은 한국군 학살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증언과 기록을 기반으로 쓴 시들이다. 김현아는 ‘겨울골짜기’에서 한국군 학살 당시 수류탄 파편에 맞아 다리를 잃고 시신 더미 속에서 아이를 낳은 릉티퍼이의 이야기를 거창민간인학살사건(1951년 2월) 때 군인 막사에서 아이를 낳았던 피해자의 이야기와 연결시킨다.
“천지간에 이런 일 겪은 사람/ 나 하난 줄 알았지”라는 말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의 기억과 한국의 국가폭력의 기억이 연결되는 순간, 한국전쟁의 기억으로 “공포의 얼굴”을 한 채 “다른 얼굴”을 마주하는 김소연 시인의 시가 겹쳐진다. 베트남-한국-팔레스타인이 “길고 오랜 죽음의 서사”(송경동 ‘만약 우리가, 우리가 아는 우리가 아니었다면’) 속에서 만나는 순간이다.
전남광주 고흥군이 3년 연속 전국에서 인구 대비 100세 이상 노인이 가장 많은 ‘장수지역’에 이름을 올렸다. 전국 평균의 5배를 웃도는 수준이었다.
8일 국가데이터처의 ‘2025 인구주택총조사 100세 이상 고령자 조사’ 결과를 보면 고흥군의 인구 10만명당 100세 이상 인구는 91.8명이다. 전국 평균(17.3명)의 5.3배에 달한다.
고흥은 2023년 10만명당 78명으로 전국 1위에 오른 뒤 2024년 75명, 지난해 91.8명으로 3년 연속 전국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현재 고흥에 거주하는 100세 이상 주민은 51명이다. 고흥군은 대표적인 초고령 지역이다. 전체 인구 5만9000여명의 약 48%가 65세 이상이다. 주민 2명당 1명이 노인인 셈이다.
그렇다면 왜 고흥에 장수하는 어르신이 많은 것일까. 비결은 단순했다. 건강하게 살고 활발하게 교류하기였다. 전남대병원 한국백세인연구단이 지난해 8월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고흥에 거주하는 95세 이상 노인 65명을 조사한 결과, 대부분 평소 식사를 적게 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했다. 술과 담배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회 교류도 활발했다. 조사 대상자의 절반은 사교 모임 등에 정기적으로 참여했다. 노인복지시설 이용이나 일자리 참여 등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꾸준히 관계를 이어나갔다.
군은 고령자가 지역에서 건강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주거와 복지, 의료·돌봄, 일자리 등 생활환경을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군 관계자는 “베이비부머와 은퇴세대를 비롯한 모든 세대가 편리하게 생활하고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지역 여건을 만들어 고령화에 적극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서경 근거로 한 묘청의 난 겪고도 ‘풍수’에 의지한 후대 왕들고려 18대 왕 의종, 개경 밖 보현원에서 핏빛 무신정변 맞아김부식 등 반발한 인물 있었지만 소수…대체할 이념도 부재
1170년 음력 8월 말, 재위 24년을 맞은 의종의 발걸음은 또다시 개경 밖을 향했다. 개경 안팎에 이궁을 여럿 지어 놓고 옮겨 다니던 터, 이날도 그중 한 곳에 가는 길이었다. 풍수적으로 좋은 땅이라 이곳에 궁궐을 지으면 왕업이 연장될 것이라는 도참에 근거해 지은 궁궐들, 이날의 의종은 개경의 동남쪽 연복정으로 방향을 잡았다. 연복정에 하루 머문 의종은 흥왕사로 이어했다. 고조부 문종이 개창한 휘황찬란한 흥왕사에서 하루 머문 의종은 다시 임진강가의 보현원으로 향했다. 둑을 막아 배도 띄워 놓을 수 있는 멋진 못도 만든 그곳을 의종은 사랑했다. 딱 요즘 철같이 선선한 가을바람과 높은 하늘이 함께할 것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곳에서 정중부를 비롯한 무신들이 칼을 빼 들었다. 평소 눈엣가시였던 문신들을 모조리 죽인 무신들이 문신들의 시체를 의종이 사랑하던 그 못에 던져 버리는 바람에 못이 메워질 지경이었다. 사람들은 온 조정이 가라앉았다는 의미로 그 못을 ‘조정침’(朝廷沈)이라 불렀다(<신증동국여지승람> 장단도호부). 무신정변 그날의 풍경이었다.
12세기 초 서경을 근거로 한 묘청의 반란을 겪고도 풍수 예언(도참)과 술수에 의지하는 고려 정치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인종도, 의종도 장소만 바뀌었을 뿐 도참에 근거해 새로운 궁궐을 짓고 이곳저곳을 이어하였다. 무신정변으로 수많은 관리가 처형당하고 임금이 교체됐어도 마찬가지였다. 인종 대에 이어 몇십년 만에 다시 본궐의 화재를 겪은 명종은 개경 주변 북쪽, 동쪽, 서쪽의 세 곳을 각각 후소, 좌소, 우소라 하며 궁궐들을 지었다. 이곳은 훗날 ‘삼소’라 불렸다. 몽골의 침입으로 강화로 천도했을 때에도 이런 흐름은 여전했다. 강화도 밖을 나서기 어려워진 조정에서는 강화도 안 마리산, 삼랑성, 신니동 등에 이궁이나 임시 궁궐을 지었다. 임금이 직접 이어하지 못하는 남경(현 서울)의 궁궐에는 임금의 옷을 대신 봉안하기도 했다.
묘청 이후에도 새로운 술사들이 끊임없이 등장했다. 의종 대에는 영의와 김자기라는 사람이, 고종 대에는 이지식과 백승현이라는 이름들이 사료에 보인다. 물론 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술사들이 훨씬 많았다. 반란을 겪고도, 임금과 정권이 바뀌어도, 심지어 도읍을 옮겨도, 장소와 양태만 조금씩 달랐을 뿐 길지를 찾고 임금이 이어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고려는 왜 이러한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여기에는 구조적인 요인이 있었다.
왕조의 시조가 내린 영험한 지침
왕조에서 시조의 행위와 자취, 남긴 말은 강력한 법이 된다. 태조가 남긴 유언 ‘훈요십조’도 그러했다. 이는 조훈, 성헌, 성훈, 유훈 등으로 불리며 고려 시대 내내 거론되었다. 별경을 건설하고 여러 곳에 이궁을 만들게 한 것은 바로 이 ‘훈요십조’의 제5조에 근거했다. “짐은 삼한 산천의 은밀한 도움을 받아 대업을 이루었다. 서경은 수덕(水德)이 순조로워 우리나라 지맥의 근본이니 대업이 만 대 동안 이어질 터전이다. 마땅히 사중에 순주하여 국왕이 100일 이상 체류함으로써 안녕을 도모할 것이다.”
이 조항은 서경(평양)이라는 도시 자체를 중시하고 순주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태조의 아들 정종(定宗) 같은 이는 서경으로 천도하려고 했고, 문종이나 예종은 서경에 새로운 궁궐을 창건했다. 인종에게 서경을 계속 추천하고 새로운 궁궐을 짓게 유도한 묘청 역시 이 조항의 자장 안에 있었다. 한편, 도시가 아니라 ‘순주’라는 행위에 중점을 둘 수도 있었다. 순주는 천도처럼 도읍을 아예 옮기는 것이 아니라, 임금이 돌아가며 일정 기간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국왕은 지맥의 근본인 서경에 가서 머물 수도 있고, 혹은 서경만큼이나 지맥에 도움이 되는 곳에 머물 수도 있었다. 숙종이 남경을 개창하고, 명종이 삼소에 궁궐을 지은 것은 지덕이 좋은 곳을 찾고 국왕이 그곳에 순주함으로써 왕조의 안녕이 영원히 계속되길 바란 것이었다. 문종이나 의종이 개경 주변에 이궁들을 건설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이렇게 건설된 궁궐 전각 이름에는 특징이 있다. 문종이 지은 장원정은 근원을 길게 한다는 뜻이다. 숙종이 지은 남경 궁궐의 정전 연흥전은 연장하여 흥하게 한다는 뜻이며, 의종이 만든 만춘정의 주전도 같은 한자를 쓰는 연흥전이었다. 무신정변이 일어나기 전 의종이 머물렀던 연복정은 복을 연장한다는 뜻이다. 거듭 흥한다는 뜻의 중흥(重興)도 자주 사용되었다. 의종이 황해도 배주에 건설한 궁궐 이름이 중흥궐이었으며, 최충헌이 자신의 집에 붙인 이름도 중흥택이었다. 그러니까 모두 왕조를 연장하거나 계속 흥하게 만들겠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들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별경이나 이궁들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문종 대 무렵부터였다. 목·화·토·금·수의 오덕이 상생의 순서로 왕조가 교체된다고 보았던 시대에 고려는 신라의 금덕을 대신해 수덕을 표방했다. 서경이 수덕이 순조롭다는 왕건의 유훈은 고려가 의지하는 바로 그 수덕을 의미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수덕의 숫자는 6과 12인데, 문종 대를 전후하여 ‘용손이 12대가 되면’ 혹은 ‘120년이 되면’ 한 시대가 다하니, 무언가 왕업을 연장하기 위한 조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정종(靖宗) 연간은 바로 건국 후 120년이 되는 시점이었고, 정종의 다음 대인 문종은 11대 임금이었다. 의종이 지은 만춘정의 정문이 수덕이었던 것은 다 이런 이유에서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문종, 숙종, 예종, 인종에 이르는 약 100년 동안 모두가 별경을 건설하거나 새로운 이궁들을 지어온 것이다. 의종의 시점에서 볼 때, 이궁을 짓고 이어하는 행위는 시조가 남긴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자, 고조부부터 100년 동안 해오던 익숙한 일이었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80년이 안 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세월의 무게가 실감이 될까? 오랜 세월 축적된 이 정치문화의 전통은 너무 무거웠다.
대안세력과 이념의 부재
전통의 무게가 아무리 무거웠다고 하더라도 이를 보완하거나 견제할 만한 세력과 이념이 있었다면 좀 더 제어가 가능했을 수 있다. 당대 문신 중에는 분명 이러한 술수적 행위가 문제 있다고 여긴 이들이 꽤 있었다. 인종 대 묘청이 그렇게 득세하던 시절에도 그 사기적 행태에 반발하던 이지저 같은 인물들이 있었다. 김부식은 신라의 박씨, 석씨가 모두 알에서 태어났고 김씨는 하늘에서 금궤에 담겨, 혹은 금수레를 타고 내려왔다고 전하는 속설을 언급하며 너무 괴이한 이야기라고 평하기도 했다(<삼국사기>, 신라 본기).
강화도를 도읍으로 삼고 있던 시절, 최자(崔滋·1188~1260)는 서경, 개경, 강도의 세 도읍을 의인화하여 서로 자신의 장점을 뽐내는 ‘삼도부’라는 글을 썼다. 여기에서 서경은 동명왕의 신이한 사적이 가득한 신비로운 도시라는 점을, 개경은 풍수의 명당으로 태조가 이곳의 여러 예언에 부응하여 왕조를 세웠다는 점을 자기 도시의 특장점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강도는 이 두 도시를 모두 비판한다. 서경이 자랑하는 신이한 이야기 같은 것은 허무맹랑하기 그지없는데 무슨 자랑거리가 될 것이며, 태조가 왕조를 세운 것은 천명에 응하고 인심을 따른 것이지 어디 황당한 도참에 따른 것이겠냐고. 신비로움이 가득한 서경과 도참과 예언이 가득한 개경을 모두 비판한 최자의 글은 강도 천도 이전 시절의 과거 정치와 여전히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정치를 모두 비판했다.
문제는 이런 이들이 소수였다는 점이다. 특히 무신정변으로 문신들이 대거 처형된 후에는 더욱 수가 줄어들었다. 그러나 설령 이들 세력이 강했어도 한계가 분명했을 것이다. 대안이 될 만한 이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자는 강도야말로 천명을 따라 정치를 행하는 덕의 터전이라고 찬양했지만, 그 덕의 핵심은 ‘검소함’ 하나밖에 없었다. 왕조인 만큼 시조를 부정할 수도 없는데, 이 난관을 극복할 만큼의 권위 있는 정치적 상징을 제시하는 이념도 없었다. 그러니까 구조적으로 술수적 세계관을 극복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구조와 제도에 한계가 분명하다면 어떻게 문제를 돌파할 수 있을까? 이럴 때 돌아볼 수 있는 것은 결국 사람밖에 없다. 군주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끈다면 그나마 기대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자가 다른 누구도 아닌 ‘임금의 검소함’을 언급한 것은 임금이라는 위치의 중요성 때문이었다. 고려사에는 의종의 정치가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짚은 김양경의 평론이 있다. 그 핵심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의종이 어진 이를 등용하고 아첨하는 이를 멀리해야 했다는 것이다. 결국 임금의 일은 사실 사람을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두는 일뿐이다. 조선 시대에 이러저러한 제도를 만들자고 하는 속에서도 늘 군주의 마음 공부, 성학(聖學)이 강조된 것은 결국 정치는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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